언론에서 본 모씨네 |
미디어에 소개된 모씨네를 모아봅니다. |
참여자-중첩되고 연결된 다발
전철원(여백)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백현주 death&us 발행인
2025.07.21.
만일 내가 사는 동네나 지역을 좀 더 알고 관계하고 싶다면, 최고 효율의 원클릭 온라인 쇼핑 대신 동네 상권 이용 비율을 높여보라. 몇 차례 구매가 반복되면 상점주나 직원과 스몰토크를 트게 되고, 품질 좋은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소비자의 마음에서 고마움의 덩이가 커질 것이다. 그러다 사업의 번창을 바라는 주인의 마음에 성큼 다가서서, 혹여 휴일이 아닌데 상점 문이 닫혀 있기라도 하면 매장을 지키던 얼굴을 떠올리며 제발 무슨 일이 없기를 원하고 바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 상대도 내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으면 그런 마음을 가지리라. 고로, 동네 상권이 결코 나를 고립사로부터 구해주리라 기대하진 않으나, 일상의 피폐함이나 메마름에서는 꺼내줄 것이라 믿는다. 이 정도가 동네, 지역 공동체의 최대한이라 생각되는 요즈음이다.
이보다 안온한 마음들이 더 짙게 오가는 인정(人情)이 있는 동네가 있다면 그건 ‘마을’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그 ‘마을의 맛’을 익히 겪어 알고 있는 전철원(여백)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났다. 영화와 문화예술교육, 그리고 마을 사이의 만남을 오랫동안 주선해온 그에게서 교육의 ‘참여자’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과 마주침이 ‘쉽게 닫히는 관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마을, 여전히 가능성의 시공간
전철원은 인천에서 나서 자라고 활동해 온 지역 예술인이자 활동가이다. 대학 진학과 영화 미디어 운동에 입문한 청년기 잠시 서울 생활을 했던 걸 빼면 생애 대부분을 고향 인천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장통은 도시화 이전의 공동체적인 분위기 속에 있었고, 다시 돌아와 살고 활동하게 된 곳도 못지않았다.
“1990년대 후반 노동운동, 문화운동을 하던 이들이 패배감과 피로감에 서로를 힘들게 하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그 복판에 있었으니 상태가 좋진 않았죠. 서울에서 돌아와 우연히 지역아동센터에 영화 수업을 하러 갔는데, 노동자 출신의 여성과 갓 대학을 졸업하고 보육운동을 도모하던 분, 셋이서 우리 동네 아이들을 조금 지켜주자며 만든 곳이었어요. 그때 제가 수업을 하러 가서 오히려 그분들한테 돌봄을 받았죠. 매주 한 번 드나드는 이 젊은이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몸 상태는 괜찮은지 진심으로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부모님 빼고 처음 만난 거예요. 당연히 몸도 마음도 회복되기 시작했죠. 제겐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세상을 바꾼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건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무엇을 함께 할 것이냐의 문제로구나 하는 걸 강하게 깨달았죠. 어쨌든 저는 영화를 하고 있었고,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지 그 아동센터에 기대면서 찾기 시작했어요.” – 전철원(여백)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에게 지역은, 빠르게 변화하고 종종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해도 가능성의 시공간이자 믿음과 기대를 갖게 하는 곳이다, 물론 낭만화는 경계한다.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범위까지는 개인적인 활동으로도 어느 정도의 변화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더 크고 본질적인 변화로 잘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반대로 어떤 변화엔 쉽게 휩쓸려버린다는 것,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웠다.
“아동센터가 있던 마을이 재개발로 사라져 버리고 그곳에 죄다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원래 살던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죠. 미디어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10년 넘게 마을과의 접점을 만들어왔는데, 이제 빠져나올 때가 된 거예요. 대신에 ‘사람과 관계’ 중심으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같은 꿈을 꾸는 예술가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독립영화협회를 만들었고, 인천여성영화제와 만나 지금의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모씨네)이 탄생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함께 만드는 관계’
모씨네는 (독립)영화와 영상 제작과 문화예술교육, 아카이브, 디자인, 브랜딩, 출판 등을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이 다양한 목록에 문화예술교육이 들어 있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호기심과 의심이 동시에 일어났다. 영화를 매개로 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할 때, 미디어교육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으려나 궁금해졌다.
“모씨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활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구조를 실험하고 있는 이유도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죠. 지원사업은 그것을 디자인한 쪽의 목표와 전략이 있는 거고, 주기가 짧아서 저희가 생각하는 걸 꾸준하게 밀고 나가기엔 어울리지 않죠. 부분적으로 필요할 때 가져다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을 기대하고 방향과 내용을 잡을 수는 없기에 재정적 독립이 가능한 사회적협동조합을 선택했어요.
‘모씨네’가 ‘무빙시네마’(moving cinema)의 약자인데, 여기서 ‘무빙’은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과 어딘가로 우리가 영화를 들고 간다는 의미가 있어요.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도 있지만, 영화를 가지고 하는 문화예술교육이기도 해요. 미디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생존권과 연결되기 때문에 미디어 접근권을 넓히고, 해당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 이것이 미디어 운동 쪽에서 말하는 미디어교육의 개념이고요. 저희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것들, 예를 들어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만난다든지, 너무나 익숙해서 놓치고 있던 자기 삶의 가치를 이야기로 드러내는 거랄지, 거기서 내 삶이 귀하구나 하는 자존감, 협업의 경험, 커뮤니케이션의 경험, 이런 것들이 개개인에게 그리고 집단에게 쌓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모씨네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이에요.”
모씨네의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행위, 즉 창작의 과정 자체가 교육과정이자 교육의 형식이 된다. 이와 함께 ‘참여자’ 역시 일방향적인 수업에서의 학생, 배우는 자에 갇히지 않고, (일시적으로) 교수자의 역할을 하게 된 예술가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관계’로 확장된다. 모씨네에서 ‘문화예술교육 참여자’란 학생이라기보다는 같이 영화를 만들고 생태계를 이루어가는 동료 개념에 가까워 보인다.
“참여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건 사실은 시시때때로 달라져요.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그 영역 전부죠. 좁게 보면 거기서 어떠한 경험을 함께 하는 게 지금 필요한가, 그리고 그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교수자로 들어가는 예술가들은 어떤 걸 할 거냐, 이런 것들을 찾아 계획하고, 그 시간과 활동을 함께 해나가는 사람들 정도를 참여자라고 생각하기는 해요. 사실 그 관계가 굉장히 중첩되어 있고 복잡하죠.”
순천어린이영화캠프
‘참여자’란 창작 과정에 들어오는 모든 것
“저희가 보통은 영화에 대한 전문적 관심이나 직업적 비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영화제작 수업을 하거든요.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 것인가를 가지고 그분들을 만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마을에서 만나는 관계라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마을을 어떻게 다시 감각하게 할 거냐,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멤버십 바깥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마주치게 할 거냐,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면서 활동 과정을 배치하죠. 그곳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어떤 기쁨과 가능성을 열 수 있는가, 이런 것을 과정 안에서 경험하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보통은 관심사 중심으로 정확한 인원을 모집해서 ‘모월모일모시부터 모월모일모시까지 모회차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세팅이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닫힌 공간에서 닫힌 활동을 하는 교육과정이 마을하고 무슨 관계가 생기겠어요. 또 복지관에서 혹은 어딘가 조금 더 전문적인 시설과 환경을 갖춘 곳에서 하는 것과는 무엇이 다르겠어요. 굳이 마을에서 문화예술교육 수업을 연다고 하는 건 마을이라고 하는 곳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존재와 장소들, 혹은 장소 그 자체일 수도 있고, 그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어떤 생명체일 수도 있는 존재들이 누군가는 의식하지 않은 채로, 또 누군가는 의도를 가지고 예술의 창작 과정 안에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설명은 수업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교육 주체인 교수자와, 이를 질서 있게 따르는 교육 대상인 참여자를 명확히 구분 짓는 전형적이고 정형화된 교실을 훌쩍 뛰어넘는다. 기획과 준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의 참여자라기보다 서툴든 처음이든 ‘영화를 함께 만드는’ 협업하는 동료이자 창작자로 참여자를 규정하고, 창작과 제작 경험의 결과로서 배움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다. 더 나아가 프로그램 수강을 공식화한 참여자를 넘어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참여까지로 ‘참여자’ 범위를 넓힘으로써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영향력과 영향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피사체로, 어떤 때는 영감을 주는 뮤즈로, 또 어떤 때는 비정기적이지만 하나의 활동에 함께 한순간의 창작자로 마을에 있는 여러 사람이 마주할 수 있게 (수업이)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것이 지역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문화예술교육 과정이지 않을까 해요. 그런 과정에서 잠시 마주쳤던 대부분의 시민, 주민들은 이게 뭔지도 모르고 지나가실 때도 많지만, 그렇게라도 접촉과 노출을 늘려가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위)‘영화로 만드는 마을’ 회복마을·청라마을, (아래)아트립(Art Trip) 가좌
참여자와 참여자 그리고 관계의 전복
“사실 제일 어려운 건 학교에서 한 클래스로 만나는 학생들이에요. 학교 쪽에서 저희에게 제시한 시간과 목표가 있고, 그 안에서 또 저희가 이루고자 하는 게 있어서 조율해야 하니까요. 협력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있으면 요청해요. 영화 수업 시간 외에 학생들이 일상의 이야기를 서로 떠들 수 있게, 교실 안에 주기적으로 자기 경험을 공통의 경험으로 아카이빙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십사 하죠. 그것을 실마리로 영화를 만드는데, 기존의 관계랑은 다른 관계들이 탄생해요. 평소에는 발언권이 높은 친구들, 활동적이고 나서서 말하고 주장하는 친구들이 주로 주목을 받잖아요. 영화 촬영할 때는 완전히 바뀌어요. 그런 친구들보다는 오히려 진중하고 말없이 해야 할 일을 천천히 해내는 친구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소중해지죠. 물론 매 순간 그렇지는 않지만, 동일인의 행동에서 다른 가치들이 발견되면서 클래스의 안에서 관계의 전복이 일어나는 거예요.”
교수자와 학습자, 강사와 참여자의 경계를 지우고 모두가 공동 창작자가 되는 한편으로, 참여자 사이의 관계를 종종 전복하는 역동적인 관계의 장, 그것이 곧 모씨네가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이다. 그것은 교수-학습의 관계에서 ‘수동적 수혜자’를 ‘능동적 참여자’라는 단어로 바꾸는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첫째, 커뮤니티 아트 혹은 예술적 실험에서 출발한 문화예술교육이 창작과 어떤 관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둘째, 참여자를 개별적 존재가 아닌 창작 과정을 둘러싼 하나의 ‘복잡하고 중첩된 관계’로 바라볼 때 경험과 앎의 차원, 영향력의 차원이 훨씬 폭넓고 새롭게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창작’과 ‘관계’가 강조되는 활동에서 프로그램의 종료라는 형식이 가져다주는 어색함과 허망함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꽤 크다. 기껏 어렵게 프로그램 밖으로 현실 삶과 같은 얽히고 중첩된 관계를 조성해 창작의 연결망을 만들었더니 이제 그만하라는 호각 소리가 울린다. 아뿔싸! (여러분은 각자의 입에 붙는 감탄사를 사용하시길 추천한다.)
“몇 주가 지나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다음이 없어요. 그렇게 끝나는 관계가 되는 거예요. 한번 관계를 열었는데 뭔가를 함께하는 다음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쉽게 닫히는 관계’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아니라 조금 다르게,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할 방법, 그런 마주침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만드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씨네에서 팀티칭과 코티칭(co-teaching)을 해온 교사들과 일 년에 한두 번 공동 워크숍을 갖다가 결국 ‘모든’이라는 교사연구모임을 만들었어요. 3년이 넘었는데 이런 포스트 과정이 일반인 참여자들과도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좋은 것 나쁜 것 서로 다 보아온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끔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어도 실망하지 않잖아요. 다음엔 또 나한테 잘하겠지 하면서요. 쉽게 끊어지지 않는 관계들이요.”
전철원(여백)
함께 살아가는 삶과 예술을 지향하며 영화를 주 매체로 문화예술교육과 삶을 기록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모씨네 문화예술교육은 영화 제작을 통해 미디어 경험과 태도, 나아가 문화를 경험하며 결과물로 영화 한 편이 아닌, 제작 과정에서 생겨나는 공통성, 협동심, 소통을 중점에 두고 있다. 학교(학생)·마을(시민) – 모씨네 – 예술가강사를 축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하여 인천 학교 문화예술교육,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커뮤니티 문화예술(교육) 기획 등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mocine.net
- 백현주
- death&us 발행인. 경기문화예술교육센터 [지지봄봄] 편집위원. 영리와 비영리, 사기업과 공공기관을 오가며 예술과 교육 관련 기획과 연구, 컨설팅을 해왔다. 조직 생활을 벗어난 지금은 각자의 대체 불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놀고 쉬는 데 있어서 비교우위에 있는 것, 그리고 ‘잘 죽는 것’에 집중하면서 꿍꿍이를 모색하고 실현 중이다. 공저로 『생애 전환 학교』(서해문집)가 있다.
hi.hjoo@gmail.com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 출처 : arte365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