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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본 모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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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목표가 된 공장… 폐전 앞둔 일제, 지하화 시도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

 

 

2차세계대전 폭격 거세져

일본군, 지하로 이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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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인천육군조병창과 미쓰비시제강 및 줄사택 일대 항공사진(RG 373, 1946. 11. 14, 미국 NARA) /모씨네 디지털아카이브 제공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하면서 일본 본토와 한반도 내 군사시설에 대한 미군의 공습 강도 또한 점점 거세졌다.

 

일본군의 한반도 핵심 군수기지인 부평 인천육군조병창도 폭격의 타깃이 됐다. 미군이 1945년 8월18일 작성한 ‘조선에서의 정보목표물’이란 문서에는 인천조병창과 평양조병창을 ‘목표물’로 적시했다.

 

일본군은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 본토의 조병창은 물론 인천과 평양의 조병창을 지하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인천조병창은 1945년 3월부터 미쓰비시제강 인천공장, 히타치제작소 인천공장, 조선기계제작소 등 지역 내 민간 군수공장까지 감독했다.

 

이처럼 거대한 군수기지 체계를 지하로 옮기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지상에 있던 기존 설비를 지하에 재배치해야 했다. 단일한 조병창을 지하로 이전하는 게 아니라 일본과 한반도 전체 조병창 간 설비의 배치를 재조정하는 프로젝트였다.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 3편에서는 전갑생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수석연구원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하는 미군의 평양병기창 폭격 사진과 인천조병창이 민간 군수공장까지 관할했음을 보여주는 부평 약도 등 각종 자료를 토대로 인천조병창의 지하화 계획 수립 과정을 짚는다.

 

오늘날 캠프마켓의 전신인 인천조병창의 의미를 지상 시설에만 국한할 수 없다는 시사점을 준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출처 : 경인일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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